본문 바로가기
가족 이야기

과분한 식구들의 사랑

by 후까 2019. 1. 2.
반응형

자주 왔다 갔다 하는 한국이고 내가 살던 집이지만 해외에 혼자사는 엄마한테는 딸, 언니 오빠한테는 동생인 내가 안쓰러운가 공항 픽업 부터 극진한 대우를 받고 있다.


설마 내가 집이 어딘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다들 일하는 시간에 도착하기에 택시를 못타면 짐을 머리에 이고서라도 걸어 가겠다고 했더니 일하던 중이라도 데리러 와준단다 \(^-^)/

지난번에 포스팅 한대로 뭔가 쫌 꾸미고 오지 않으면 파산 직전에 도망온 아이처럼 생각하기에 오랜만에 컬러풀한 빨간바지를 입고 왔는데, 면바지 입고 왔다고 또다시 헐벗고 산다고 뭐라 한다.

동경 12월 평균기온 10도야~
많이 추워야 8도라고~ 뉴스에서 춥다고 난리나는게 5도 정도일걸.
눈오면 재난이고.


그래도 영하에 근접한 한국 날씨에 면바지는 춥긴했다.
그러자 언니가 또 기모바지 두개를 홈쇼핑에서 5개 짜리 산거라며 가져다 주었다. 따스한 기모바지 Get!

오자 마자 뭐 먹고 싶은거 가고 싶은데를 묻는데 식구가 아니라 손님대접 수준!!
난 그냥 떡국만 먹고 싶은데~


내가 오길 기다린 엄마가 평소에 비워뒀던 냉장고를 꽉 채워서 고기며 생선 채소까지 풀옵션으로 식탁이 채워졌다.

맘이 놓여서인지 긴장도 풀어지고 집이라는 아늑함. 그리고 연말 연시 휴가가 길어서 푹 쉴 수 있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극락 혹은 천국에 온듯 너무 좋았다.

그러다가 엄마가 푸짐하게 해준 남은 반찬을 꾸역 꾹꾹 먹다보니, 저녁 식사 후 속이 답답해 왔다.

소화제도 먹고 화장실도 가보고 마루를 몇십바퀴 돌아도 답답 어질한게 아무래도 탈이 난듯 했다.

그리고 날이 밝아 1월 1일 새해인데…
떡국 먹자는 식구들 사이에서 얼굴이 퍼렇게 떠서 앉아 있자, 엄마는 체한것 같다며 체내리러 같이 다녀왔다.

결국 한바가지 게워내고 까스 생명수를 먹고나서야 겨우 살아났다.

병원에서는 소화제만 주던데 면허 없는 의료가 바로 사람을 살려 내다니 대단하다.

병원에서 못살린 곧 죽어가는 사람 몇 살린 사람이다.

결국 새해 첫날 떡국은 못먹었다.


대신 먹은게 전복죽

엄마가 시장에서 흥정하여 사온 5키로
살아있는 꿈툴거리는 전복을 하나하나 손질해서 내장은 젓갈을 담그고 나머지는 죽을 만들어 먹고 나머지는 일본에 가져가서 반찬 하라며 전복장을 만들어주었다.

반찬 값에 보일러 기름 값 까지 내고 가야 할듯 하다.

자주 못보는 식구라 마음이 허전한지 엄마는 반찬 만드는 손길에 정성이 더해진다.

평소에는 많이 없던 식구들이 한집에 다 모여 식사를 하고 주방에서 요리하는 엄마도 오랜만에 엄마로서의 행복을 만끽했나보다.

무릎 수술하고서 오래 못서 있는데 식구들 먹을 요리를 하고 내가 가져갈 반찬을 만들며 무릎에도 활기가 돈다.

꼭 내가 와서 그런것은 아니지만 가족들이 모이는 기쁨. 그리고 형제들 끼리 싸움없이 잘 지내는 것도 복이라며 기뻐하셔서 내가 다 눈물이 나더라

다시 일본으로 돌아게 되어서 나도 섭섭한 마음 마음에 엄마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도 오랜만에 긴 시간 엄마와 오래 수다를 떨었다.
엄마가 힘들었던것 앞으로의 바램. 살면서 짜증나는 울분까지 여자의 수다로 다 들어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편들어 주지 않았던 마음도 나에게 얘기하면 엄마편을 들어주기에 엄마도 속 시원했던 모양이다.

옆에서 자주 얼굴 보여주지 못하고 걱정하게 만드는 불효녀지만 안아픈 손가락 없다고 보듬어주셔서 매우 감사하고 감사한마음 뿐이다.

매일 저녁 어깨와 허리 다리를 주물러주고 엄마 옆에서 자고 오는 날도 오늘까지.

엄마도 마음은 알겠지만 잘 표현못하는 딸 땜에 마음 상하지 않도록 내가 잘살고 내가 잘해야 겠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의견과 느낌을 적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페이지 안의  하트 ❤ 를 눌러주시면 좋겠습니다.
  (특정 국가와 단체, 상품의 왜곡된 표현이 있을 수 있습니다. )

★답글도 매우 환영합니다.  감사한 의견에 제가 배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리드형(광고전용)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