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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뉴스와 신문&사회

이총: 조선인 귀무덤에 대한 일본 신문 기사

by 후까 2018.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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みみづか [耳塚] 미미즈카
    [명사] 이총; 예전에 적의 목을 베는 대신 귀를 베어 내어 묻은 무덤.


야후 뉴스를 보다가, 눈을 끄는 기사가 있었다.
우리는 잘 아는 역사인, 일본인이 조선인의 귀와 코를 베어 갔다는 것인데
교토 신문에서 기사를 낸것이다.

기사 내용과 코멘트 내용이 흥미를 끌어서 그대로 번역 하여 올려본다.

[미미즈카(이총)]이란  조선인의 귀와 코를 베어와 공양

11월7일 수요일 19시10분 배신  -- 쿄토 신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한반도에 출병 한 임진왜란 (1592 년 ~ 1598 년)의 유적 (교토시 히가시야마 구).
무덤에 거대한 오륜 석탑이 서있다.
히데요시의 장병이 전쟁의 공이라는 표시로 적의 머리 대신 귀나 코를 베어 가지고와 묻었다고 [요도 양안 일람」에 적어놓았다.

코 무덤이라고도 한다.
히데요시 군은 조선인의 코와 귀를 잘라 전승의 증거로 소금이나 식초에 절여 일본으로 보냈다.

히데요시는 이러한 귀나 코를 묻은 자리에 높이 약 8 미터의 이총(귀 무덤)을 쌓았다.
전국 통일을 이룬 히데요시는 중국 대륙 침공을 노리고 한반도에 출병했다.

1592년의 제1 차 출병 시의 병력은 약 20만명의 대군에서 4월에 부산, 6월에는 평양을 함락했다.

히데요시 군이 본격적으로 조선인의 귀와 코를 잘라내는 행위를 시작한 것은 1597년의 제 2차 출병부터 였다.
히데요시군의 무장 모토야마 (本山安政)가이 남긴 기록에는 "히데요시의 명령이므로 남자, 여자, 어린 아기까지 코를 잘라 매일매일 소금에..."라고 기록되어있다.

처음에는 목을 잘라 보냈지만 후에 귀나 코를 통속에 넣고 소금이나 식초에 절여 규슈 · 나고야를 통해 히데요시에게 보내졌다.

귀와 코의 숫자로 싸우는 모습이 평가되었다고 하여, 히데요시군의 다이묘는 경쟁적으로 잘라 보냈다. 
히데요시는 1597년에 이 무덤을 세웠다. 이때, 승려 400여 명을 불러 공양을 했다.


베스트 코멘트 일부 (추천수)


ver***** 사실인 것은 알지만, 지금의 상황에 또 이런 기사입니까?..
교토 신문은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그것을 기사에 써주었으면 하네.

ZZZ 이것은 사실이라 생각함, 그렇지만 세계사에서 상대국의 희생자를 공양하는건 없는 것 같아.

qnb ***** 불행히도 이것은 사실 이랍니다.
중세 근세 전문 역사가라면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에 사실은 사실로 인정하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하지만 이런 기사는 별로 보고 싶지 않아요.

kg5 ***** 그래서? 지금 시대에 뭘 어떻게 해? 어느 나라도 전쟁이 번성 한 시대에 있었던 일 이라 생각하는데. 일부러 지금 기사를 내는 의미는?

지나가던 사실 정확하게 기억해야겠지만, 기사로 발표할 타이밍이라는 것이 있는 것 아닌가?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재일 한국인이야?

spg ***** 제대로 공양해주는 것이 일본인답네요.

btg ***** 그렇지만 그 전에 대마도 측에서 몽골과 함께 상당히 어이없는 일을 하고있지 않았나요?

빗나간이나 의미 불명 한 코멘트는 반면교사
이것은 따로 히데요시의 조선 출병 때 특별히 행해진 것이 아니라, 전국 시대에는 일본의 전쟁터에서 평범히 행해지고 있던 것입니다.
항상 생각하지만, 역사적 사건에 대한 파악 방법이나 평가는 현재 일본인의 가치관과 윤리관을 잣대로 하여 실시하는 일에 의문을 느낍니다.
전국 시대에는 패전한 적장의 목을 자르는 것은 무가의 결정인 것이고, 공격하여 멸망하면 여자와 아이까지 살육하고 본보기로 한 것은 다테 마사무네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다른 이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감각은 매우 잔인하기 짝이 없는 사건이라고 파악 해버립니다만, 전국 시대에 매일을 필사적으로 살아 있던 사람들의 일을 단순하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올바로 파악하는 방법이나 평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기사는 당시 일본의 무가의 풍습이나 결정 혹은 사건을 설명하지 않고, 이런 기사를 쓰고 있는 것에 매우 악의를 느낍니다.
이 기사는 일본의 잔학성을 폄하하는 목적의 편향 보도 네요.

uuq ***** 또 피해자 비즈니스로 발전할 수도 있으니 삼가해 주셨으면 한다.

tks ***** 쓱 보니까 직접 관계없는 것 같지만 징용공 문제와 관련해서 일본을 나쁘게 보는 캠페인의 일환 기사 네요. 앞으로도 이런 기사가 더 나올거라고요!

rai ***** 사실이지요, 이 시기에 이 기사는 악의를 느낍니다
반도와 관계가 있는 사람의 기사라고 추측해 버립니다

j_p ***** 공양했다고는 해도, 역시 심한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로 아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왜 이 타이밍에 히데요시의 조선 출병만을 거론하는 것입니까?
전 · 고려 연합군이 대마도와 이키에서 무엇을 했는지도 따지지 않으면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GOROTS  옛날 싸움, 전 세계 어디든 상대의 목을 가져가는건 어디나 하고 있었던 것. 그런거 안하면 누구누구를 죽였다는 증거가 되지 않으니까.
그래 그렇다고 해도 공양을 하는 나라는 일본외에 없지 않을까?
그리고 왜 지금 이것을 기사로?
혐한 감정으로 동정심을 심으려고 해도 무리야.

yun ***** 끔찍한 사실이지만, 지금의 한일 관계와 얽지 말라.
징용공 판결은 전혀 다른 문제.

게으른 킨 씨 이런 일본인으로서 걱정을 하게 되는군요. 그럼 한반도의 사람들은 어떨까요?
사실이 귀 무덤이 있던 절은 조선 통신사와 연회의 장소 였었습니다. 이 절에 오고 싶다는 조선 측의 요구를 받은 것입니다
희생자의 명복을 빌었을까요? 아니, 다릅니다. 귀 무덤을 조선인에 보이는 것은 문제가 있기 때문에 막을 쳐서 숨기는게 어떤가 하고 쓰시마 번 통신사 접대 담당의 아메노모리 호슈의 의견을 아라이 하쿠세키가 받아들였습니다. 안보여주면 상관없었다는군요
이 절에 오는 것이 문제가 된 것은 그 이후 입니다. 사실 이 절은 히데요시가 칼 사냥으로 모은 칼을 사용하여 불상을 세운 것을 기원으로 하는데, 지진으로 불상이 파괴된 것을 히데요리가 재건했다는 호코지라는 절이었습니다 ( "국가 안강" 비문에서 유명한 종소리가 있었다 절입니다)
오히려 귀 무덤이야말로 조심했으면 좋았 네요

tax ***** 이것은 사실이니까 어쩔 수 없지만 왜 이 시기에 거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요? 위안부나 징용공 문제에 기름에 불붙이는 꼴 아닙니까?

mat ***** 피해자 비즈니스 같아.

the ***** 기사와는 별도로 당시의 역사관이라고 하면 일반적인거 아냐?
현대 감각으로 과거의 역사를 본다는게 어리석은거야.오케하자마 전투 때 오다의 지시가 있었다 잖아 "전부 목을 따올 것 ~"라고.
출진하여 무사들이 보상을 받기 위해 목을 잘라 오는 것이 필요했다니까, 그게 조선에가면 너무 멀고 너무 무거워 코와 귀를 뽑고 왔다는 거지.
공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먼 옛날의 일이고, 별로 소란이 될것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jun ***** 사실로 인정하지 않으면 안돼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이 타이밍에 올리는 게시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ben *****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 결과에 무책임하면 안된다. 원폭 개발의 교훈이다. 보도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교토 신문은 지금 이를 보도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보도는 순수한 사실의 전승이 목적이 아니라 재미 삼아 관계 악화를 부채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학문을 방패로 삼아 역으로 악의를 느낀다.


▶코멘트 2페이지 까지만 번역..


여전히 반성 없고, 지들은 그런거 아니라는 ..
이 시기에 민망하다는거는 알고는 있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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